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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과학부문에서 한국인은 언제 받을 수 있을까?

by Biopharma Explorer 202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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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국은 노벨상 증후군이 된다. ㅋㅋㅋ 

내가 일본에서 박사과정일 때 재학중인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었다. 

바로 옆 건물에 있던 교수였는데, 문제는 정말 미치도록 바빠가지고 결국에 

노벨상 메달을 한번도 못보고 졸업했다는 것이다...

진짜 얼마나 바빴으면 캠퍼스내에 있는 박물관까지 가서 실물인 노벨상 메달을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ㅋㅋㅋ

 

일본인의 노벨상 과학부문 역사는 꽤 길다. 

갈릴레오라는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유카와 마나부는 일본의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라는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롤모델로 삼았던 드라마다. 

194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는데, 한국은 아직 한명도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과학분야에서의 격차를 실감한다. 

 

 

전후 일본은 연구비 투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그 효과는 2000년대 들어와서야 나오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따라서 1960-1990년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그 수상자 수가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연구비 투자, 또는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한 후, 최소한 20-30년이 지나서야 그 연구의 업적을 평가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한국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제대로된 연구를 시작했는가?

잠깐 노벨생리의학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면 한국과의 격차는 더 실감난다. 

유럽,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1951), 호주 (1960)까지 다른 지역, 국적의 연구자는 전혀 받지를 못하다가,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라는 일본인 과학자가 DNA rearrangement에 대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수상한다. 

그것도 단독 수상이었다. 

도네가와는 일본에서도 매우 유명한 과학자이고, 아직 리켄(이화학연구소), MIT에서 연구자로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2012년까지는 아시아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유일한 케이스였다. 

몇년 전에는 MIT를 다니던 아들이 죽었다는 뉴스도 나왔었다. 

www.nytimes.com/2011/10/27/us/mit-freshman-son-of-nobel-winner-is-found-dead.html

Massachusetts: M.I.T. Freshman Is Found Dead (Published 2011)

A freshman at the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whose father is a Nobel-winning scientist on the faculty, was found dead in his dormitory room.

www.nytimes.com

1996년 피터 도허티(호주)

2012년 야마나카 신야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할 때까지 아시아에서는 아무도 받지를 못하고 있다가 거의 30년만에 받은 케이스이다.

transcription factor를 여러개 조합해서 세로운 형태의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에 성공한 독창적인 내용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내가 관련 연구에 대한 논문을 읽고 있었는데, 받았다고해서 놀란 기억이 있다.

야마나카의 경우에는 연구 결과 몇년후에 받았으니 꽤나 높은 평가를 빠르게 받았던 것 같다. 

2015년 중국인 출신의 연구자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때까지 일본은 단독으로 2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5년 오오무라 사토시(일본): 기생충 연구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일본): autophagy 연구

2018년 혼조 다스쿠(일본): 그 유명한 자가면역항암제 옵디보의 기초연구

일본인 출신은 총 5명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있다. 

역시나 pharmaceutical industry는 연구비도 가장 많이 들고, 단기간에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형태의 연구가 필요한 산업인 것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세계제약회사 랭킹을 보아도 유럽, 미국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다음 시장이 일본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노벨상 수상자의 국적, 출신을 보면 일치하는 부분이 이해가 된다. 

한국은 3대 과학저널에 실린 한국 과학자의 논문은 95년 2건에서 98년 6건, 2003년 13건의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90년대 들어와서야 겨우겨우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의 논문을 실을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부터 제대로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면 2025년-2035년 사이에 첫 수상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늦게 시작했으니 차이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우연히 쥐 죽이는 일은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가난한 어떤 천재 한명이 튀어나와서 한국에서 저임금,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면서 40대에 뛰어난 성과를 만들고, 60 정도에는 한국에 있는 어떤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을 확률은 너무나도 낮다.

이미 90년, 2000년대부터 한국내 상위권 대학에 있는 재학생의 부모의 배경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돈과 학력은 너무나도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연구라는 것은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양질의 연구가 될 수 있도록 보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연구라는 것은 돈이 안되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안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블로그에서 누누히 이야기 했지만, 사회전반적으로 박사학위자에 대한 형편없는 처우는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미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박사학위자에 대한 대우가 학석사 출신과 시작자체가 다른 유럽, 미국의 케이스를 본다면 어떻게 해야 과학이라는 것이 더 발전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대우를 한다고 발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우도 없으니까 인재는 아카메디아로 진입하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는 줄어든다. 누구나 그냥 돈 되는 일, 대우받는 일을 원하는게 당연하니까. 

한 나라의 과학의 발전 수준은 그 나라 사회전반적으로 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어떤지 보면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해보인다. 

어느 기사의 한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3대 과학저널 게재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며 "각국의 GDP와 논문 게재 수는 거의 비례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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